초등학교 저학년 학예회 장기자랑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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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장기자랑 뭐 할지 정해야 해."

 

학원까지 마치고 하교한 아이는 가방을 소파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면서 제일 먼저 내뱉었다. 

 

'올 게 왔구나.'

 

난 한숨부터 나왔다. 작년 2학년 장기자랑 시간에 반에서 몇 안 되는 '기권자'였던 딸아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장기자랑 미션을 받아 들고 왔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올해는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담임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부모나 이맘때가 되면 고민에 빠지겠지만 내 기준에 딸아이는 유독 별 다른 특기가 없다. 요즘은 만화를 그린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장기자랑 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부끄러움도 많은 데다가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이였기에 고민은 깊었다. 

 

일주일 정도 고민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마지막 날 전날 밤까지도 아이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가 몇 년 전 학교에서 장기자랑 시간에 마술을 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딸아이에게 마술을 권했다. 단번에 싫다는 답이 나왔다. 악기 중 제일 만만한 리코더를 제안했지만 그마저도 싫단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 하는 뮤지컬 수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춤과 노래를 권해봤자 거절 당할게 뻔했다. 

결국 어떤 장기를 할지 담임 선생님께 말해야 하는 날 아침, 나는 딸아이를 다시 한 번 설득했다. 

 

"그냥 일단 마술로 해. 나중에 한 번 바꿀 수 있다면서? 엄마가 어떤 마술 할지 말 찾아보고 같이 연습해 보자, 응? 응?"

"아.. 알았어...." 

 

결국 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술을 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다음날부터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며 뭘 준비하면 좋을지 찾기 시작했다. 마술이란 게 특별한 도구가 있어야 가능했기에 마술 도구부터 구입해야 했다. 가장 만만한 곳이 쿠팡이었다. 리뷰가 많이 달린 걸 찾아서 덜컥 구입을 했지만,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도 왠지 많은 아이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아이들의 야유나 수군거림은 미리 차단하겠지만 그래도 앞에서 발표를 하는 입장에서 관객들이 시시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금방이라도 눈치챌 것이기 때문에 내가 준비해 주는 마술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쿠팡에서 구입한 마술 3종 도구 

 

 

10가지 이상의 마술 도구 세트로도 팔고 있었지만 괜스레 이것저것 많이 사는 것보다 낱개로 선택해서 구매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3가지 정도만 같은 판매자를 통해 구매하여 배송비를 아꼈다.  

 

첫 번째(하단좌측) 도구는 스펀지로 된 두 개의 공이다. 왼쪽에 보이는 네모 스펀지는 안쪽을 뒤집으면 동그란 모양이 된다. 이 스펀지 2개로 두가지 마술이 가능한데, 한가지는 한 손에 두개의 스펀지를 쥔 다음 마치 내 손이 공이 한 개 인 것처럼 관객들에게 보여준 다음,  짠 하면 두 개를 보여주는 마술이다. 또 하나는 네모 스펀지 안에 둥그런 스펀지를 밀어 넣어 동그라미 공이 마치 네모로 바뀐 것처럼 보여주는 마술이다. 

잘만하면 신기한 마술인지만 아이의 작은 손으로 매끄럽게 연기를 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자칫 금방 들통이 날 수도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두 번째 마술 도구는(우측) 하얀색 긴 막대가 짠~하는 순간 3개로 부서졌다가 다시 1개로 붙는 마술이다. 물론 원래 1개짜리 막대와 3개 막대가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난이도는 최하 수준이다. 

 

 

세 번째 마술 역시 신기하긴 하지만  이 역시 난이도가 최하 수준이다. 통 안 뚜껑에 자석이 있어서 통을 한 번 흔들면 큰 주사위가 뚜껑에 붙게 되고 큰 주사위 안에 있는 작은 주사위들이 통 안으로 떨어지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술이긴 하지만 뭔가 시간을 끌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쇼'를 보여주기에는 조금 시시하기도 하다. 

 

이렇게 3가지 마술을 3일 정도 연습했으나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엄마의 욕심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하기에는 조금 쉽게 느껴졌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발표 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장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칼림바와의 만남 

 

그러던 중 친정엄마와 아이 둘을 데리고 KTX를 타고 수원을 다녀왔다. 친정오빠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을 여행 겸 다녀오기로 했다. 오빠네 아이들이 둘이 있는데 한 명은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한 명은 2학년 여자 아이였다. 우연히 그 집에  칼림바라는 악기가 있는 것을 보았다. 둘째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데 거기서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 추가로 가르치는 악기라고 했다. 

호기심에 만져보니 소리가 너무 이쁘고 소리를 내는 방식이 매우 단순했다. 다루기도 어렵지 않았다. 딸아이가 몇 번 쳐 보다니 관심을 보였고, 나는 이때다 싶어 칼림바로 장기자랑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딸아이는 단번에 좋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칼림바를 주문했다. 가격대는 다양했지만 그래도 믿음이 가는 삼익악기 칼림바를 구매했다. 가격은 3만 원대로 브랜드 악기였지만 역시나 가격이 저렴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음악을 연주하느냐였는데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얼마 전 너무나 재미있게 본 스즈메의 문단속 OST를 연주하기로 했다. 반복되는 리듬도 많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유치하게 생각할만한 동요는 아니어서 딱 좋았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은 후 딸아이가 잘 볼 수 있도록 종이에 큼지막하게 써서 내밀었다. 그날부터 맹연습에 들어갔다. 

나도 몇 번 해봤는데 칼림바의 특성상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면서 음계가 올라가다 보니 손가락이 뜻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연습을 하더니 3일 정도 지나자 2/3 정도를 외워서 연주하게 되었다. 

 

발표회 시간에 칼림바 연주하는 딸 아이

 

 

담임 선생님이 찍어주신 칼림바 연주 실황 (앞부분 30초)

 

드디어 결전의 날인 목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잘했냐는 말보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말부터 먼저 했다. 아이는 웃으며 무사히 잘 끝냈다고 해주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렇게 연습하고 준비해 준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잠시 후 학교종이 앱에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 개별 동영상을 올리셨는데 알림 소리와 함께 확인한 첫 영상이 바로 우리 딸의 영상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딸아이의 영상이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이다. 난 그냥 나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했다. 영상을 확인하는 내마치 저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 처럼 손에서 땀이 났지만 끝까지 차분하게 연주하는 딸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   

 

학예회, 장기자랑을 하는 교육적 목적

 

사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 장기자랑 준비를 해야 한다는 딸아이 말에, 그런 건 안 했으면... 싶었다. 특별히 특기가 없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본인도 본인이지만 부모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잘하는 것 하나쯤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 나사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어른으로서도 힘든 일 아닌가. 그랬는데 모든 게 다 끝나고 나니 '아차' 싶었다. 아이가 기죽을까 봐, 아이가 난감해할까 봐라는 생각으로 교육과정 중 하나의 중요한 학예회의 교육적 의미를 철저히 간과하고 내 아이의 기분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그런 교육들을 받으면서, 그때는 부모 도움 하나 없이 나 혼자서 모든 걸 혜쳐나가면서 지금의 '나'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선생님이 업로드한 다른 친구들의 동영상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친구와 함께 준비한 춤추기, 리코더 연주도 있었고 기타 연주, 줄넘기, 마임, 노래 부르기 등 최선을 다해 준비한 장기를 펼쳐 보이는 아이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대견스러웠다.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였다. 장기자랑의 목표란 그런 것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친구들 앞에서 숨겨왔던 자신을 보여주는 것."

누군가는 수줍고 떨려서 준비한 것들을 다 펼쳐 보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반아이들이 온전히 자신만을 향해 집중하고 귀기울였을 시간은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됐을 것이다.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장기자랑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아이는 한층 더 성장한 듯 보였다. 아이 자신도, 부모인 나 역시도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을 것 같았지만 생전 처음 만져보는 악기인 칼림바를 함께 준비하면서 '자신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성장도 이끌어 내는 마법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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