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리적 특징 및 유명한 유적지 혹은 관광지를 배우는 단원이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는 우리 지역의 문화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고, 지역 사회 발전에 공헌한 위인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조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에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5월 1일부터 5월 6일까지 학교장 재량휴업으로 긴 연휴를 가지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 지역 유적지를 답사하고 간단히 일기로 적어오는 과제가 주어졌다.
부산의 대표 유적지 - 충렬사
집과 가깝기도 하고 해서 충렬사를 마음 속에 두고는 있었지만, 딸아이가 직접 선택하게 하려고 인터넷으로 부산의 유적지를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검색창에 충렬사가 가장 상위에 떴는지, 단번에 충렬사를 가보겠다고 했다. 옳거니, 하고 우리는 연휴 마지막 날인 5월 6일에 뜨거운 햇살을 가려 줄 모자와 생수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4호선 충렬사역에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충렬사가 있다. 부산시 동래구와 같은 큰 도심 한가운데 이런 유적지가 있다니. 하긴 동래는 예부터 부산의 중심지로서, 동래의 역사가 곧 부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서가 깊은 지역이다. 1900년대 이전까지 부산이 아닌 동래가 부산의 명칭을 대신했을 정도이니, 지역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충렬사는 어떤 곳인가?
부산 동래구에 위치한 충렬사는 1952년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부산지역 호국선열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다. 1605년 동래성전투로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송공사'를 건립하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오늘날의 충렬사의 시작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낯선 인물일 수 있지만, 부산진구에 송상현 광장이 있기 때문에 송상현이라는 이름은 부산 시민들에겐 매우 익숙하다.
송상현 선생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을 지키던 송상현에게 일본군은 동래성을 모두 둘러싼 후 동래성 안으로 다음과 같이 적힌 팻말을 보냈다.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겠다면 길을 비켜라.
그러자 송상현은 이리 적힌 팻말을 다시 보냈다.
戰死易 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
동래성이 함락되자 송상현은 옷을 차려 입고 부친에게 절을 한 뒤 당당히 왜관 앞에 나서 죽기를 자처했다. 결국 목이 베여 죽게 되었지만, 왜적의 수장이 그의 충성에 감동하여, 송상현 공의 목을 친 부하의 목을 베었다고 하니 전 세계 유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울컥하는 대목인가? 지금까지도 송상현 공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충렬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송상현이 누구인지, 충렬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양산에서 부산으로 이사온지 한 달도 안 된 두 아이가 송상현 공의 충성심에 감동하여 시키지 않았는데도 진심으로 묵념을 하고 나오기 전에 경례도 했다. (갑자기 경례를 해서 놀람.)
내려오면서 기념관에서 동래에서 벌어진 왜적과의 싸움에 얽힌 그림과 이야기 등을 보면서 또 한 번 부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교과서를 보면 답사 계획서를 세우고 항목에 맞춰 답사 기록을 남기도록 되어 있지만, 딸 아이가 받은 과제는 답사 후 일기를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세세한 항목에 맞추기보다 일기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쓰도록 했다.
처음에는 유적지 답사 과제라서 엄마인 나도 살짝 긴장을 했다. 보통 유적지를 가면 어른도 잘 이해하지 못할 한자가 뒤섞인 설명들 때문에 인증샷을 남기는 정도에 머무르곤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출발 전과 충렬사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충렬사가 어떤 곳인지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고, 도착해서는 둘러볼 것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더 충렬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깊이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혹은 부산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더니 두 아이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돌아가신 조상들의 업적을 기리고, 과거를 되돌아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오늘의 충렬사 답사는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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