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가 된 요양 보호사 (feat.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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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 보호사 15년차인 엄마가 돌보시던 86세 할머님께서 몇 달 전 심장마비로 댁에서 돌아가셨다.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된 엄마는 노동부 실업급여 대상자가 되셨고 다행히 5개월 정도 실업 급여를 받으실 수 있었다. 2년여 동안 돌보았던 정이 많이 든 할머님을 보내고 한 동안 엄마도 힘들어하셨지만, 어쩌면 그렇게 댁에서 일상 생활 하시다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게 자식들에게 더 복일 수도 있다며 빨리 잊으시려는 듯 보였다. 

갑작스런 할머님의 죽음

주말을 보내고 여느날 처럼 엄마는 시간에 맞춰 할머님이 사시는, 5일장 안에 있는 2층집 주택의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 작은 셋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웬일인지 문이 잠겨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항상 잠긴 현관문을 열어 놓으시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엄마는 문을 두드리며 할머니를 불렀다. 그런데 할머니는 대답도, 인기척도 없으셨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할머님께 전화를 하는데, 안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도 않으시고, 당연히 나오지도 않으셨다.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지만 엄마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 집을 빙 돌아 뒷쪽 베란다로 갔다. 햇살 때문에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찢어져 있는 방충망에 억지로 손을 밀어 넣어 샷시 잠금장치를 올리고 문을 열었다. 거실엔 아무것도 없었다. 안방에서 티브이 소리가 들렸다. 안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님은 침대 옆, 바닥에 차려진 밥상 옆으로 엎드려 계셨고, 미동이 없었다. 

 

엄마는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을 직감했다. 도저히 할머님을 일으켜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은 채 엄마는 마당에서 119 구급차가 도착하길 기다렸고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할머님은 사망한지 하루가 넘은 것 같다고 했고, 엄마는 할머님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사고로 인해 1년째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를 돌보느라 아들은, 한달에 한 번 찾아뵈던 어머니를 찾아뵌 지 3개월도 더 넘은터였다. 할머니의 시신이 치워지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님의 장례식에 찾아간 엄마는 딸자식이 둘이나 더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동안 할머니는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둘째 딸이라고 한 분은 엄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엄마를 잘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엄마를 찾아뵙질 못했는데 오빠한테서 보호사님이 너무 좋으신 분이라고 많이 들어서 항상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힙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다음날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내 병원을 지켜야 하고, 할머님 물건을 엄마가 더 잘 알고 있으니 할머님 짐 정리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리가 끝나면 사례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일주일 간 엄마는 매일 할머님 집에 가던 시간에 할머님 집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차근 차근 하나씩 할머님 물건을 정리하셨다. 할머님은 살아 계실 때도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노령연금으로 먹을 것들과 약제들을 사 모으는 걸 좋아하셨다. 혼자 사시는 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많이 사 모으셨는지, 집에 먹을 것들과 휴지 등 생필품은 물론 상비약부터 영양제까지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엄마는 그 아들에게 가져갈 만한 것들을 모두 정리해서 주고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데, 폐기물이 너무 많아 트럭까지 섭외해서 비용을 주고 버려야 했다. 

텅 빈 방 창가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누군가의 빈 방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고 이후 6개월 정도 엄마는 직장(?) 을 잃은 관계로 실업자 생활을 하셨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셨지만, 오랫동안 모셔온 할머니의 그림자가 오래도록 남아, 그 시장,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셨다고 한다. 

 

이제 다른 할머님을 모시게 된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듯, 지금 할머님께 또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내가 요양 보호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할머님은 가까이 계시다면 매일 찾아가 도와드렸을 거다."라고 하시는 마음씨 고운 우리 엄마.

 

삶의 마지막 시간. 늙고 병들고, 할 줄 아는 것 없는 자신의 치부, 혹은 나약함은 누구나 자식에겐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스스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드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요양 보호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15년차 요양 보호사 엄마의 열 번 째 어르신 - 깔끔쟁이 93세 할머니

올해 요양 보호사 15년째를 맞이한 친정 엄마는 최근 새로운 할머님 댁으로 출근을 하게 되셨다. 6개월 전 모시던 할머님이 혼자 외롭게 자택에서 숨을 거둔 뒤 어쩔 수 없이 실업 급여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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